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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8-10-03 오전 8:51:01  조회수 : 1667
  2601 . “탈북 한 어르신의 참담했던 삶 전 과정 영화로 만들고 싶다”
  등록자 : 통일신문        파일 :

“탈북 한 어르신의 참담했던 삶 전 과정 영화로 만들고 싶다”
[인터뷰] 북한인권국제영화제공동조직위원장 이장호 영화감독

한 탈북민이 강제북송 된 자들이 갇힌 수용소 시절을 상기했다. 죽어나간 시체더미에서 꿈틀대며 나오는 구더기를 먹고 살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감옥의 문은 바깥에서 열어야 한다는 말처럼 탈북민들이 북한 인권문제 참상을 외부에 적극 알린 탓에 수용소의 인권실태도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음을 알게 돼 보탬이 되고자 증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증언이 최근 개최된 북한인권법 2주년 토론회에 참석한 좌중을 숙연하게 했다.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색소폰을 든 한 몇몇의 얼굴들도 눈물을 훔친다. ‘빛 가운데’라는 이름의 동호회원들은 북한인권 개선을 바라며 증언에 나서준 용감한 탈북민들을 위한 위로공연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동호회를 이끄는 이는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날, 공포의 외인구단 등으로 1980년대 영화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거장 이장호 감독(74세)이다. 지난 2011년부터 북한인권국제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감독은 이번에도 북한인권 개선에 힘을 싣고자 동호회원들과 함께 재능기부 형태의 색소폰 공연을 선보였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고기잡이배가 활기를 띄던 바다가 있는 마을 함경남도 북청에 대한 추억담을 들으며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민족애를 갖게 됐다는 이장호 감독이다. 이태원 사무실에서 만나 북한인권 문제와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어떤 것인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함경남도 북청출신으로 신포면 양화면이 고향이셨다. 할아버지가 갖고 있던 사업이 서울에 영업본부가 있어 해방 전에 남쪽으로 내려오시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한테 북청 고향에 대한 추억담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고향에 대한 판타지가 생겼고, 청소년 때는 북한에 가는 꿈을 꿨다.

항상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갖고 있다. 서울서 자랐으니까 고향이란 개념이 전혀 없다가 성장하면서 북청 고향에 대한 그리운 감정들이 생겼다. 그런 애정들이 모여 북한인권문제에도 관심이 모아졌던 듯싶다.

▶할아버지,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북에 대한 추억담 중 기억에 남는 대목을 회상한다면.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조부모님 고향에 바다가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할아버지는 명태잡이 배를 여러 척 갖고서 명태를 서울에다 파는 일을 하셨는데…할아버지 말씀으로 상상되어진 바다와 고기잡이가 저한테는 일종에 로망이고 긍지가 됐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난 연애시절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마치 영화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북청에 있는 심포 유치원 원장과 선보기로 해 유치원을 찾아갔는데,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있던 보모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당황해 도망을 가더란다. 아버지는 바로 저 여자다 싶어서 쫓아갔는데, 그게 우리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붙잡고 대화하게 된 이는 원장이 아니고 어머니였던 거다. 그 인연으로 결혼을 하셨는데, 어렸을 때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모든 게 꼭 바다가 있었기에 가능한 얘기 같았다.

비록 가지 못한 고향이지만 환상 속에서 바닷가, 북청, 바다를 낀 마을의 이미지가 상당히 독특하게 그려졌다. 북청이 북청사자놀음, 북청물장수, 교육열이 전국에서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옛날에 한강물을 식수로 사용했을 땐데 한강물을 퍼서 집집마다 배달해주는 것을 북청사람들이 많이 했단다. 교육열이 높아 물장사해 번 돈으로 자식을 대학까지 교육시켰다.

▶이산가족상봉, 실향민 문제 관련 이야기를 접하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이산가족상봉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북에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산가족상봉 후에 많은 사람들이 남쪽 소식을 듣게 되고 경계의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 수 있었다.

북한에 계신 분들이 처음엔 굉장히 경계를 하는데 헤어질 때쯤 되면 애틋한 감정이 전달이 되었는지, 여태까지의 태도와 다르게 정말 힘들게 산다든지, 그런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같은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 지금 더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남쪽 가족들과 만나고 교류하다 보면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 독재체제에 대한 문제점 등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강제북송 문제를 다룬 북한인권법 2주년 토론회에서 북한주민 VJ가 목숨을 걸고 북한 내부의 모습을 촬영한 기록물을 편집해 상영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북한인권영화제에 판권을 넘긴 일본사람이 제작한 거다. 기록물들은 오래전부터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진 일본 분이 탈북자들과 북한주민에게 돈과 기계 장비를 사주고 몰래 촬영하게 도와 수집해 온 것들이다. 기록물들은 일본서 편집해 북한인권영화제에 출품했다.

자유와 민주화를 염원하며 체제 변화를 바라는 북한주민이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꽃제비, 장마당 등 내부의 모습을 촬영한 기록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게다가 한국 사람이 아닌 일본사람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만들고 있는 모습에 부끄러워진다. 한국 영화인으로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의욕도 생기고 그렇다.

북한주민 VJ가 목숨 걸고 촬영한 기록물
北인권 다룬 영상물 보면 항상 울다 끝나
일본인이 북한인권 개선 위해 제작한 것에
한국 영화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그런데 중국에서 강제북송을 하고 있다. 북송 저지를 위해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토론회에서도 강제송환 실상이 전해졌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행을 시도했던 일가족 5명이 압송되다 음독자살한 일부터 중국선양 탈북민 10여명이 강제 북송된 일, 인신매매, 성노예, 강제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생활 등 북한은 인권유린의 온상이 돼가고 있다.

강제북송 문제는 개개인의 힘을 넘어 세계 전체에 적극 알려, 국제사회 여론으로 중국 정부의 강제북송정책이 중단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토론회를 주최했던 한변(한반도통일을준비하는변호사모임)에서도 중국의 강제송환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전 국민적 캠페인을 벌릴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탈북자들이 외부에 적극 알린 탓에 북한 수용소의 참혹한 인권문제가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었다는 증언처럼 세계적 여론을 모아 강제수용소 안에서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당시 현장에서 색소폰 동호회원들과 함께 탈북민을 위한 위로공연을 선보였다.

CBS라고 기독교 실업인 모임의 멤버들이다. 기업을 갖고 있거나 변호사, 방송인 등 전문인들이 매주 모여 목사님 설교말씀 듣고 아침예배를 보고 있다. 색소폰 동호회는 자연스레 결성됐다. 제 경우색소폰을 어려서부터 불렀는데, 악보도 볼 줄 모르던 사람들이 어느 날 일제히 악기를 사가지고와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8년이 흘렀고 이제는 잘하고 ‘빛 가운데’라는 이름의 동호회 안에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다들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토론회 현장에서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으며 가슴아파했다. 뜻 깊고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며, 대가없이 봉사연주를 하고 있다.

영화인과 지식인, NGO단체들 뜻 모아
2011년부터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시작
북한 인권을 화두로 공감대 확산 기여
사각지대 놓인 북한인권 현실 안타까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으로서 함께하고 있다. 영화제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 및 성과는.

북한인권국제영화제는 분단의 현실과 통일 북한 인권 실상에 대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환기하고자 마련됐다. 제1회 때 행사 주관단체인 북한민주네트워크의 고문으로 있는 유세희 한양대 명예교수, 연극배우 오현주 씨가 함께 영화제를 만들자고 해서 셋이서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영화인과 지식인, NGO단체들이 뜻을 모아 함께하고 있다. 북한인권의 실상과 체제고발, 탈북민들의 애환 등을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 영상물을 통해 알리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해 운영상의 어려운 와중에도 가을이면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개막하고 있다. 또 영화 공고를 해서 10~20여 편의 수상작을 선정, 제작비를 지원해 영화를 만들어 상영한다. 북한인권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작품을 수확해나가는 것도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영화를 만드는데 애로점이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부족한 예산 문제다. 통일부에서 일정부분 지원해주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금액이 줄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다. 무엇보다 애로점은 북한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다. 2회 땐가 좀 더 대중적인 곳에서 해보려고, 서울역 광장에서 개막식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엔 노숙자분들이 호응해줄 줄 알았는데, 강력히 반발 했다.

지금 북한 인권이 문제냐,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라…. 이는 한 예로 비단 그분들의 항의가 아니더라도 북한인권 문제는 여러 진영, 각계각층에서 소외돼 왔다. 보수정권도 북한 인권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을 보이지 못한 한계를 나타냈다. 또 진보 정권은 북한 인권에 대해 오히려 기피하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대학생들은 북한은 다른 나라로 간주한다. 국가가 서로 다른데 거긴 거기대로, 우린 우리대로 살면 되지 북한 인권이 문제냐, 그렇게 냉담하게 바라보는 것이 현재의 실상이다. 북한인권문제는 우리만 얘기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북한인권 문제 해결 노력을 위해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이나 정책적 제언이 있다면.

정부가 북한인권문제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기를 바란다. 최근 동향을 보면 답답한 문제가 많이 있다. 예컨대 남과 북의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가고 이산가족상봉 등 교류 활성화 및 관계개선을 위해 상호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노력할 것을 노력해야겠지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기록은 사실대로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초중고 통일교육 교재에서 북한의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주민사회통제 등 주민인권 침해에 대한 내용, 독재체제 등의 기록이 삭제·변경된 것으로 전해져 착잡한 심정이다. 정부가 사실은 사실대로 역사를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이 우리민족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합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에 대한 민족적 관심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해주기를 기대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면, 6.25남침 때 많은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갔다. 그들이 전부 낙동강 부산에 모여들 당시 뜨거운 동포애로 맞아주었다. 북한주민이 우리 동포라는 것,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의식 캠페인 등을 통해 마련됐으면 한다.

北 3대 세습 독재체제 우상화 깨어지길
평등과 자유의 기독교 정신 중요한 가치
북 주민에 혼자 아니다, 말해 주고 싶어
통일 되면 북청 고향에서 영화 만들 것

▶통일철학이라든지, 인권, 영화에 대한 가치관, 삶의 소신에 대해 듣고 싶다.

기독교 정신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경제성장을 할 수 있던 배경에는 하나님이 주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자유와 평등의 기독교 정신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독교 정신이 북한에도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화다. 그런데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체제의 우상화 나라 아닌가. 만약 북한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보고나면 수령 독재체제에 대한 우상화는 다 깨질 것으로 본다.

내부에서의 우상화 세뇌는 여전히 공고한 듯하다. 한 예로 탈북 해 중국에 있던 언니가 공안한테 잡힐까봐 불안해 한국으로 탈출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북한에 있는 여동생을 데려와 한국에 같이 가려했는데, 이 여동생은 탈북 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래도 조국이다, 언니 혼자 가라, 난 다시 돌아가겠다, 완강하게 말했다고 한다. 국제적으로 북한인권의 처참함이 지목되고 있지만, 세뇌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대해서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신상옥 감독님이 하신 말씀인데, 영화감독한테 제일 중요하게 뭐냐는 질문에 ‘영화감독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격이다’고 했다. 당시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나고 나니까 영화는 정말 인격이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됐다. 예술을 만드는 근간이 무엇이냐를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인권 주제를 다룬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탈북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 살아온 모습에서부터 탈출하는 과정을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다. 그간 북한을 다룬 영화 변천사를 보면 옛날에는 영화에서 북한을 너무 모양이 없고, 북한 사람을 무조건 나쁘게, 형편없이 그렸다. 이에 영화인들이 자숙하기를 북한도 독일군처럼 멋있는 놈은 멋있게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이만희 감독 같은 분은 반공법에 저촉돼 이적행위라고 재판도 받기도 했다.

그 다음 세월이 좋아져 JS공동경비구역, 강철비 등에서 북한 사람이나 북한인민군이 훌륭하게 그려지는 쪽으로 변모하게 됐다. 저는 이를 다시금 북한을 사실적으로 리얼하게 그리고 싶다.

쓰레기더미에서 먹다 버린 옥수수를 주워, 붙어있는 몇 알을 한 알 한 알 모아 주머니에 차고 있다가 어디선가 씻어 하루 한 끼를 연명하는 것, 그걸 에너지 삼아 목숨을 잃지 않고 결국 탈북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참담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금도 북송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분들, 목숨을 걸고 vj활동하고, 지하교회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절박하게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과 탈북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묵묵히 북한 인권을 위해 애쓰는 분들도 있다. 천기원 목사는 탈북민을 구출하고 북한에 복음을 전파하며 단체 두리하나를 이끌고 있다. 이 분이 탈북민을 구출하는 과정을 한 언론사가 기록영화로 찍기도 했는데, 그 정신과 의지가 정말 대단했다.

한 번은 천기원 목사가 탈북민 구출을 돕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재판을 받게 됐다. 담당검사가 중국 사람인데 나중에는 목사님이 걸어온 삶의 행보에 감동을 느껴 존경하게 됐고, 그것이 인연이 돼 목사님 딸하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일화도 있다.

지하철을 타보면, 모두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영혼을 저당 잡힌 것 같은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자리가 하나 비었다. 서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자리에 앉고 싶지 않겠나.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도록 나는 계속 서 있어도 좋다, 괜찮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처럼 북한 인민들한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해 노력해줄 분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훗날 북한주민이 자유를 얻고 통일되는 날이 오면 말로만 듣던 북청 고향 땅을 밟고, 그곳서 영화를 만들 날을 꿈꾸고 있다.

2018-03-22 통일신문 윤진석 기자38tong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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