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

    등록일 : 2017-06-03 오전 7:44:56  조회수 : 307
  2406 . 세상을 바라보는 눈
  등록자 : durihana        파일 :

좋은 말도 세번 하면 잔소리다-예 그 교회 잘한것 많소. 그러나 사고는 발생 하지 않는것이 더 났소. 한 인간의 삶에 불행을 주고 치료 해서 나아지면 그런것이 하나님 기적이요?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불행을 격는 자들을 모두 기적을 보게 못하오. 또 삭제 하시오. 나 아니면 다른것은 인정 않하는 속좁은 교리가 이 세상에 없는 날이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는 세상일 것이요. 아픈 아이를 두고 교리 선전 그만 하시오.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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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하나를 위해 잊지 않고 비판하시고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광일님의 댓글은 한 번도 삭제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그대로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에서 그 험하고 위험한 먼 길을 오셨으니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기쁘고 행복하시기를 바라며, 북한에서의 삶이 비판과 비난 이였다면 남한에서의 삶은 격려와 칭찬으로 바뀌시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판의 글은 상처를 주지만 격려의 글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사람은 눈이 두 개 이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두 가지입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는 눈과 위기 속에서 위험을 보는 눈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현상을 보더라도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합니다.

-하늘은 어떻게 저토록 눈부시도록 푸른가?-에 대하여 진화론자는 가시광선만을 대기권이 투과시키다보니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라고 생각하며, 창조론자는 하나님은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창조하셨다.”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보면 왜 사랑스러운가-라는 질문에 진화론자는 종족보전의 이기적인 유전자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며, 창조론자는 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라고 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이해합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내가 무엇을 듣고 보았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보는 눈이 달라지려면 특히 생각하는 머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판단을 정확하게 하는 것, 주관 객관을 떠나 진실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타난 모든 일들은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와 원인에 의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며 그것을 원인과 결과에 의한 법이라 하여 인과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과를 다 보면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자를 기독교에서는 은혜 받은 자라하고 불교에서는 깨달은 자라고 합니다.

대부분 중생들은 눈뜬 장님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각자의 업이라는 색안경을 낀 채 세상을 바라보기에 똑같은 사실을 바라보면서도 파랗게 보이기도 빨갛게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동물도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볼까요? 동물에 따라 눈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도 다르답니다. 대부분의 어류는 눈이 머리 양쪽 옆에 한 개씩 달려 있는데 눈 한 개가 180º를 볼 수 있어 양쪽 눈으로 360º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류는 이와 같이 세상을 둥글게 구부러진 모습으로 본답니다.

개는 매우 예민한 후각을 가진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시각은 어떨까요? 예상 외로 개는 시력이 나쁜 동물로 빨간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랍니다. 시각장애자를 도와주는 안내견이 신호등을 구별하는 것은 색깔을 구별해서가 아니라 점등 위치를 혹독하게 훈련 받은 결과라고 하네요.

잠자리, 벌 등과 같은 곤충은 여러 개의 눈이 합쳐진 겹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겹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자이크와 같은 모양으로 보이게 됩니다.

사람들이 눈이 달렸다고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다 같은 것이 아니고 딱딱한 껍데기 안에 갇혀서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늘 피해자로 남을 것이고 자기 안에서 새롭게 눈을 뜬 사람에겐 또 다른 세상이 보이는 법입니다. 세상은 보고 싶은 데로 보이게 마련인데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원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한마디로 혁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혁명의 기본 의도는 자기혁명이 아닙니다. ‘내가 가난한 것은 부한 사람 때문이다’ ‘부한 사람과 자본주의를 제거하라’ ‘인텔리겐차를 몰아내라이것이 공산주의 혁명입니다.

혁명은 하나같이 스스로 책임지려는 행위가 아닙니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가난한 것은 부자 때문이다, 그런고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혁명 숙청, 혁명 숙청을 되풀이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10월 혁명으로 7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후 소련에서는 백만 명도 넘게 숙청해가면서 그 체제를 유지해갔다고 합니다. 엄청난 피의 역사입니다.

무릇 모든 일의 책임은 항상 내가 져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까지도 내 책임이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도덕성이요 종교성입니다. 그런데 만사가 내 책임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항상 불평과 불만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세계 역사에서 문제아로 두 사람을 꼽습니다. 하나는 마르크스(Marx. K.H.), 하나는 프로이트(Freud, S.)입니다. 마르크스는 유물사관에다 정치나 경제 등 모든 사고 체제를 대입시켰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생산도구로, 수단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결국은 사람이 물질이 된 것이지요. 인간부재입니다. 인간이 인간된 존재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자유국가에서의 문제아로 프로이트가 있습니다. 그가 끼친 영향은 향락 위주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비비꼬고 흔들고, 돈은 벌어서 뭐하느냐, 그저 즐기고 보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의 타락과 향락주의 때문에 썩어문드러져 망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절로 망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소유의 문제도 아니요 질서, 제도, 기술, 자본의 문제도 아닙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그 공부한 것과 인간 됨됨이는 별개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돈이 있고 없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위가 높고 낮고도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은 그대로 인간일 뿐입니다.

두리하나를 설립할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2:14~15]

한 새사람을 지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새사람이란 카이로스 안드로퍼스입니다. ‘카이로스라고 하는 말은 물리적인 혹은 물량적인 새로움이 아닙니다. 시간적인 새로움도 아닙니다. 이는 질적인 차원의 본질적 새로움을 의미합니다. 어제와 오늘, 이러한 시간적인 차이에서 오는 새로움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새로움이란 본질적이요 인간적인 차원의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에서 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중생의 문제입니다.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기적이 아니고는 새로움이란 이 땅에 없습니다.

춘미가 사고를 당하고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음을 우리는 기뻐하고 기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늘 불만스러운 표정과 웃음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성()을 쌓던 춘미가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여러분! 저는 웃지도 않고, 말도 안하던 옛날의 춘미가 아닙니다. 이제는 밝은 모습으로 항상 웃고 사랑하며 예수님처럼 이웃을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고백으로 새사람이 되었기에 우리는 기뻐하며 기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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