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마당

    등록일 : 2017-04-03 오후 2:27:48  조회수 : 1292
  2378 . '사상의 정적 충격과 정서의 미적 울림' 최숙미의 수필세계
  등록자 : durihana        파일 :

연어만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게 아니다. 폭포를 거슬러 올라야만 할 소명을 가진 이가 있다.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 신부는 악기 오보에하나만 메고 절벽을 오른다. 목숨을 걸고 절벽을 올랐으니 일차적 소명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자신의 출현을 알리려 오보에를 연주한다. 음색엔 두려움이 실렸다. 숲속에서 스멀스멀 원주민들이 나타난다. 떨리는 심정을 오보에 연주에 감추며 그들의 눈치를 살핀다. 그들 또한 타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크기에 몹시 경계를 한다. 오보에 소리에 신기해하는 그들 사이로 추장이 다가와 악기를 빼앗아 망가뜨려 버린다. 목숨을 내려놓을 때 도리어 두려움이 사라지는 걸까. 신부는 태연하니 저들의 처분을 기다린다. 경계를 푸는 원주민들의 눈빛은 연주를 원하는 듯하다. 슬그머니 망가진 오보에를 집어 들어 연주를 한다. 그때야 두려움보다는 원주민을 향한 소명에 연주가 뜨거워진다. 그들에게 심어줄 신앙의 첫 발은 무기가 아닌 음악이었기에 감동을 준다. 신뢰가 쌓여가며 신부의 소명이 펼쳐진다. 영화 <미션>의 첫 장면이다.

가브리엘의 신부 같은 삶을 사는 소명자들이 있다. 탈북자를 돕는 천기원 선교사가 그중의 한 사람이다. 사업차 중국 출장 중에 일명 꽃제비아이들과의 인연으로 탈북자를 돕는 소명자로 나셨다. 편안히 잠을 자고 풍요에 즐거워할 수 없는 고통이 그의 의식을 흔들어 놓았다. 그들과는 혈육도 친척도 아니며 어떠한 인연도 없었다. 왜 그들의 탈북을 돕느냐고 물으면 같은 동포의 고통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들을 사랑해서 좌불안석인 마음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위한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라는 소명 하나로 그들과의 접촉에 나섰다. 삼엄한 중국공안과 내부 고발자들과 북한 경비병들의 눈을 피하며 목숨을 건 모험이 시작되었다.

간간이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두만강 가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탈북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자들의 주검이다. 아이조차 울어서도 안 되는 탈출은 끝없이 이어진다. 겨우 강을 건너 중국으로의 탈출이 성공하면 인신매매꾼들이 접근을 한다. 그들에게 붙들린 탈북자들의 운명은 자신들의 것이 못 된다. 일부 여성들은 중국 시골로 팔려가거나 음성 사이트 운영하는 자들에게 넘겨져서 감금된다. 목숨을 건 탈출이 무색하게도 인권이 상권에 남용된다. 음성 사이트를 이용하는 자들은 대부분 남한 남성들이란다. 같은 동포들인 남한의 남성들은 그들의 인권을 간접으로 유린하며 즐긴다지 않는가. 어렵사리 천 선교사와 연락이 닿으면 또다시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다. 감금된 곳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떨어져 죽은 이가 있었다. 천 선교사는 정확한 위치파악을 할 수 없어 발을 구르는 중에 다른 탈북자로부터 이 소식을 접하고는 자식을 잃은 듯 슬퍼했다고.

탈출은 비밀리에 몇 개국의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긴 행로에 탈북자도 인솔자도 탈진하고 만다. 저들의 자유와 안식만이 천 선교사의 소명이고 평안이기에 함께 고통을 견뎌낸다. 또한 탈북자들을 돕는 중에 몽골 국경지대에서 중국경비대에 체포되어 8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흙바닥의 혹독한 추위와 실내 변기통과 모래 섞인 물을 한 컵에 하루 두 끼 누런 밀가루 떡 덩이로 연명했어도,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간 열 세 명의 탈북자들이 당할 가혹한 형벌이 천 선교사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7개월이 넘도록 가족의 면회도 안 될뿐더러 영사와의 면담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심문자의 거듭되는 질문은 왜 그들을 돕느냐는 거였다. 친척이거나 아는 관계가 아니라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천 선교사의 소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12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미국 상하 양원에서 석방결의안이 나오면서 8개월 만에 벌금을 내고 추방됐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심문을 하던 중국검사가 검사직을 구만 두고 한국으로 천 선교사를 찾아 왔다. 어떤 이념이 그에게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게 했는지 궁금해서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선의는 또 한 사람의 인생행로를 변화시키는 역사를 가져왔다.

천 선교사의 두리하나선교회 주관으로 거행되는 탈북동포의 날10주년을 맞았을 때의 일이다. 교회 여러 단체와 탈북에 힘을 싣는 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탈북자들과의 만남과 북한 정부를 향한 성명서가 선포되었다. 천 선교사를 유대인을 구출해 낸 쉰들러 같은 선각자라고 소개했다. 쉰들러와 천 선교사의 행적이 교차하는 중에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교회에서 커피 한잔을 사는 것도 탈북자를 위한 일인데 그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던가. 기념예배가 끝나고 틈을 내서 탈북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 소녀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신앙 안에서 밝게 살아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또 미안해서 깊이 안아 줬다. 저들과는 자주 얼굴을 대하지만 정작 친숙하게 지내지는 못 했다. 그러한 관계가 서운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성큼 다가서지 못한다.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해명하기에는 내가 가진 사랑이 작아서가 아닐까.

탈북에 도움을 받은 자 모두가 천 선교사에 대해서 고마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불평을 하고 거짓을 말하고, 모함하기도 해서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겪는다. 사소한 오해가 그의 발목을 잡아 소명자의 역할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노릇하던 애굽에서 광야로 탈출시켰을 때 먹을 것을 주든지 다시 애굽으로 돌려보내 달라며 모세를 원망하던 모습과 흡사해보여서 공분이 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함이나 원망이 억울하다고 소명을 멈출 수 없는 일이라며 염두에 두지 않는다. 소명자의 역할이 그런 것일까. 어찌 인간적인 애통함이 없을까마는 탈북을 요청하는 자들을 찾아 가시밭길에 나서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고 인류를 구하는 소명자이지 않을까.

미국 국회에서 탈북자들의 고통을 호소하고 미국인들과 재외동포들로부터 호응을 받아 그들을 탈북 시키는 데 발 빠른 행보가 이어진다. 우리나라 정부에선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으려 하는데다, 국민의 무관심이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탈북자들을 남한에 와서 적응을 잘 못하는 부분에 일조하는 셈이기도 하다.

오보에하나만 들고 원시인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던 가브리엘 신부는 그들과의 신뢰가 쌓이기까지 죽음의 공포에서 떨었다. 천 선교사 역시 죽음의 기로에서 오는 공포가 습관처럼 엄습하리라. 소명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보통의 성정을 가진 사람이기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추방된 이후로 중국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처지를 몹시 안타까워한다.

강을 거슬려 올라야만 했던 가브리엘 신부처럼 오늘도 탈북자들을 위해 절벽을 오르고 국경을 넘는 저들을 위해 뜻을 모았으면 한다.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천 선교사와 같은 소명자들이 거슬러 오르는 절벽에는 둘이 하나되는 생명의 꽃이 피어나고 있으리라.

서평 : 사상의 정적 충격과 정서의 미적 울림
최숙미의 수필세계

최숙미는 누구보다도 폭발적인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중부권 베스트 작가 중의 한 명이다. 본격 수필공부를 해서인지 그의 글은 재치와 유머가 빛난다. 한편의 수필을 쓸 때마다 산문가적 감수성의 섬세한 공명에도 주의를 기울인 탓일 것이다. 견고한 문학적 수사 장치와 비유를 동반하면서 비판의 거침풍자해학으로 버무려 순화시키는 솜씨는 최숙미의 문학적 저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수필 쓰기의 알파와 오메가는 마지막 문장 쓰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마무리를 잘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의 멋과 묘미는 치환에 있다. 최숙미 수필의 쾌미는 수필을 종결의 문학으로 각인시키는 데 있다.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선택을 통한 실존적 삶

수필의 궁극적 가치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는 삶의 가치와 동일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의 가치는 즐겁고 행복한 삶의 추구에 있고, 그러한 삶의 추구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정신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 자세를 바로 잡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이런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 한 탈북자를 돕는 선교사의 이야기를 수필화한다. 선교사의 거룩한 정신과 자신의 소아적 태도의 비교를 통해 실존적 삶의 핵심인 선택이란 주제의 구체화를 이루는 작가의 솜씨가 빛난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일 것이다. 그리고 수필가는 이 같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와 명제의 해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미적 형상화 차원으로 고양되지 못하면 신변잡사에서 맴돌게 된다. 이 점은 작품을 직접 살펴보면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최숙미는 이런 삶의 문제를 실존의 문제와 오버랩 시켜서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반성적 성찰을 통해 주제의식을 공감으로 이끌어가는 면에서 인성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가 자신의 태도를 실존적 삶의 수준까지 보여준 점에서는 그 녀의 제재통찰이 본질 차원의 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천 선교사의 두리하나선교회 주관으로 거행되는 탈북동포의 날10주년을 맞았을 때의 일이다. 교회 여러 단체들과 탈북에 힘을 싣는 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탈북자들과의 만남과 북한 정부를 향한 성명서가 선포되었다. 천 선교사를 유태인을 구출해 낸 쉰들러 같은 선각자라고 소개 했다. 쉰들러와 천 선교사의 행적이 교차되는 중에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교회에서 커피 한잔을 사는 것도 탈북자를 위한 일인데 그 작은 일에도 무관심하지 않았던가. 기념예배가 끝나고 틈을 내서 탈북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 소녀에 대해서는 아는 건 없지만 신앙 안에서 밝게 살아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또 미안해서 깊이 안아 줬다. 저들과는 자주 얼굴을 대하지만 정작 친숙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러한 관계가 서운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성큼 다가서지 못한다.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해명하기에는 내가 가진 사랑이 작아서가 아닐까."

수필은 태생적으로 사색의 편린이어서 종국에는 자기 성찰과 관조에 머물게 된다. 특히 반성의 문학으로 불리어지기도 하는 수필은 자아를 찾는 작업인 것이다. 자시 성찰은 바로 자기 내면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수필은 체험의 이야기이지만은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사색의 기쁨을 주는 여유와 멋이 담긴 문학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데 있다. 그래서 작가는 탈북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쯤 되면 왜 작가가 자신의 부끄러운 내면을 고백하는 지금 궁금할 것이다.

반성감동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속주제의 내면화에 있다. 결국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율배반적이면서 표리부동한 사람들이 즐비한 세상에 이런 인간성을 희구하는 수필가의 마음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은 쓸모가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우리들 정신의 심부에 쾌감을 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작품에서 보이는 인생관은 비움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무소유의 정신이다. 탈북자를 도우며 비움을 위한 길을 떠나고자 다짐하는 선교사의 삶을 통해 작가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일 것이다. 적당히 차면 비우려는 마음 자세는 욕심이 없는 사람임을 뜻한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고자 하는 작가의 자세는 윤리적 삶의 철학을 보여 준다. 이 글을 읽어 가면 인생이란 스스로 선택하기에 따라 행복하고 멋지고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는 그녀의 인생철학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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