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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스
    등록일 : 2009-06-12 오전 11:43:54  조회수 : 828
  23 . “통일 후에 북한에서 인재양성 교회 세우겠다”  
  등록자 : 두레신문        파일 :

 

No, 23
이름:두레신문
출처:http://dooraenews.com/news/view_news.php?vnum=1057&catname=%B5%CE%B7%B9%BF%EE%B5%BF&page=
“통일 후에 북한에서 인재양성 교회 세우겠다”  

“통일 후에 북한에서 인재양성 교회 세우겠다”는 김정재(가명)씨

김정재(가명) 씨는 탈북하고 남한에서 정착 프로그램을 마치고 곧바로 신학교에 입학해 탈북자 가운데서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1999년 탈북을 결심했을 때 그의 부친은 탈북을 말렸다. 탈출하다 붙잡히면 정치범 수용소 내지는 총살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김씨 부친의 이런 만류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부친은 국군포로였다. 북한 생활은 국군포로라는 이유 때문에 일생을 공산당의 협박과 위협 가운데 살았다. 이런 삶 때문에 김 씨의 부친은 공산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어 아들의 탈북을 만류한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부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탈북했다. 더 이상 북한에서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한 출신의 성분을 뛰어 넘어 북한에서 출세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북한에서는 광폭정치를 통해 성분이 좋지 않은 출신도 등용의 기회를 준다.

그러나 어느 선까지만 출세할 뿐 북한정부가 정한 선을 넘지 못한다. 김정재 씨도 그런 한계에 부딪혔던 것이다.“결혼할 때도 역적의 집이라고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을 만큼 국군포로 집안이라는 것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다. 신분적 고통과 사회의 천대가 결국 북한을 탈출하게 했습니다.”아내와 딸만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갔다. 가족 전부가 남쪽으로 가는 것이 여의치 않아 일단 그가 먼저 제3국을 거쳐 먼저 남한에 왔다. 그리고 아내와 딸은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전도사를 통해 남한으로 넘어왔다.그는 일찍이 조선족 친척을 통해 남한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남한이 일본을 따라 잡는다’는 말은 곧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는 일본이 최고로 잘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만 해도 남한에 탈북했다고 하면 마을에서 그 가족들은 역적 취급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잘 갔다고 부러워합니다. 90년대만 해도 50% 정도가 북한정부를 지지했지만 지금은 북한주민 90% 정도가 북한정부에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서로가 믿지 못해 말은 하지 못하지만 북한주민이 살 수 있는 길은 북한 정권이 망하던가 탈북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부친을 북에 두고 탈북했지만 김정재 씨의 부친도 뜻밖의 사건을 통해 탈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의 브로커들이 김 씨의 부친이 국군포로라는 사실을 알고 중국으로 납치했던 것. 2003년 10월 중국에서 김씨는 찾는 전화가 왔다. 그의 부친을 데리고 있으니 돈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김씨가 믿지 않자 직접 그의 부친과 통화를 하게 했다.

김씨의 부친은 6개월 동안 브로커들에게 잡혀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외무부와 국방부에 도움을 구했지만 허사였다. 당사자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김씨는 브로커가 요구하는 돈을 구하기 위해 탈북자 동료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받았다. 결국 부친도 탈북을할 수 있었다. 부친의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이미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다. “국군포로였던 아버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희안한 방법을 통해 부친을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한 것은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김정재 씨가 남한에 와서 적응교육을 받은 후 그는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중국에 있을 때 만난 선교사 때문이다. 재미교포인 선교사의 모습 속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남한에 와서 선교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신학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그의 생각만큼 녹녹하지 않았다. 모든 그리스도안들이 중국에서 만난 선교사 같은 인격과 신앙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컴퓨터 자동화 기술을 전공한 그는 기독교 경영목회에 관심을 갖고 있다. 신학공부를 하면서 야간에는 전문 대학에서 IT 전공을 병행했던 그는 통일 후에 북한에 세워질 교회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있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이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입니다. 교회에서 주민들에게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면 생계문제도 해결되고 또 신앙심도 갖게 되기 때문에 더없이 좋을 것이라고 봅니다.”그는 최근 동료들과 함께 탈북기업인회를 구성했다. 이들과 함께 탈북자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컴퓨터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컴퓨터 학원을 준비하고 있다. 정작 남한에 왔지만 사회에 적응도 못하고 아무런 비전 없이 방황하는 것을 보고 이들에게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시킬 요량에서 준비한 것이다.

“탈북자의 마음은 탈북자가 잘 알 것입니다. 최근까지 교회가 탈북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피상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일부 교회는 돈 몇 푼 주는 것으로 탈북자들을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과 길을 열어주는 도구들을 쥐어주는 것입니다.”김 씨는 신학을 하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교회가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일꾼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종으로 혹은 교회(조직된 교회)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37 호 2004-08-21일 발행 양봉식 기자(sunyang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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