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CBS
    NEWDAILY
    YTN
    두레신문
    국제신문
    제주일보
    뉴스모음
    프레시안
    통일정보신문
    KONAS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NK조선
    세계일보
    내일신문
    매일경제
    헤럴드경제
    한국경제
    연합뉴스
    부산일보
    매일신문
    스포츠서울
    일간스포츠
    미래한국신문
    데일리NK
    독립신문
    오마이뉴스
    뉴스앤조이
    굿데이신문
    기독교연합
    크리스천투데이
    크리스천헤럴드
    크리스챤연합신문
    기독일보
    기독교신문
    기독신문
    국제기독신문
    Korea Herald
    기타
    내셔날지오그래픽
    LA타임즈
    와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CBS뉴스
    보스턴글로브
    RFA
    VOA
    USA아멘넷
    기타
    국내언론보도
    해외언론보도
     

뉴 스
    등록일 : 2009-06-12 오전 11:43:38  조회수 : 735
  22 . 열심히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등록자 : 두레신문        파일 :

 

No, 22
이름:두레신문
출처:http://dooraenews.com/news/view_news.php?vnum=1046&catname=%B5%CE%B7%B9%BF%EE%B5%BF&page=
열심히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탈북자와 대담을 할 때면 으레 가명을 쓴다. 사진도 정면 사진이 아니거나 흐리게 처리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정재송 씨는 대담을 시작하면서 이름과 사진의 공개 여부를 묻자 망설이지 않고 좋다고 했다.

“괜찮습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는데요.”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 속에는 아쉬움과 허탈함이 배어 있었다.

정 씨는 96년 6월 말 북한을 탈출했다. 이유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김정일을 비방한 것을 누군가가 밀고했기 때문이었다. 정 씨의 친구들 중에는 외국에서 유학을 한 친구들과 외화벌이(무역)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세계 동향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정일 체제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보위부에서 찾는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곧바로 도망쳤습니다. 잡히면 정치범 수용소로 들어갈 것이 뻔했으니까요.”정 씨는 아내와 딸, 아들을 챙길 시간도 없이 서둘러 중국으로 도망 나왔다. 그는 최종 목적지를 남한으로 정했다. 이미 북한에서 그는 남한에 대한 사정을 알았다. 중국에 머무는 것보다 남한으로 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첫 탈출 시도는 홍콩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중국 국경수비대에 잡혀 도문까지 호송되었다. 도문은 탈북자들을 잡아 북으로 넘기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중국 공안원에게 그는 살려 달라고 애걸했다.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공안원 중에 조선족 여자 공안원이 있었다.

그는 중국어를 통역하면서 그를 변호해 주었다. 그리고 조선족 공안원이 북한에 직접 인계하겠다며 그를 데리고 나와 “중국 산골로 가서 살라”며 풀어 주었다. 산골로 도망친 그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상하이(上海)에 있는 한국 영사관을 찾아갔다. 영사관에서는 몇 가지 조사를 하고 기다리라고만 하고 내보냈다. 정 씨는 상하이에 있는, 남한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1년 넘게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다. 결국 식당에서 일하면서 만난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3일을 보내고 미얀마로 갔습니다. 미얀마 국경수비대에 몇 번 붙들렸습니다. 미얀마 국경수비대는 국경을 넘는 탈북자나 중국인들을 잡으면 다시 중국 국경으로 넘기기만 합니다. 결국 성공을 해 일행들은 양곤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그는 한국 대사관만 찾아가면 환영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탈북을 하면서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정 씨는 그렇게 탈북자들이 많다는 것을 중국에 와서야 알았다. 미얀마 한국 대사관을 찾은 그는 길고 힘든 탈출 때문에 병을 얻어 한 달가량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미얀마에서 불법 체류자로 체포되기도 했다. 다행히 미얀마 변호사를 통해 여권을 발급받아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남한에 온 그는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데려올 생각을 했다. 북한에 있을 때 보위부 조사를 받지 않아 정 씨에 대한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은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조선족을 통해 아내와 자녀들을 중국으로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남한으로 데려올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조선족은 가족을 인질로 삼고 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조선족을 통해 첫 번째 조선족에게서 가족을 빼냈지만 두 번째 조선족도 똑같았습니다.”

남한에 있던 동료 탈북자를 중국으로 내보내 일을 처리했지만 허사였다. 정 씨는 할 수 없이 중국으로 직접 들어갔다. 가족들과 재회하여 그는 곧바로 미얀마로 탈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감시가 너무 심해 광저우(廣州)로 갔다가 탈출을 포기하고 상하이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 씨는 상하이에 집을 얻고 아내를 거기에 두었다. 일전에 도움을 받았던, 식당일을 하던 한국인이 “돈만 주면 가짜 여권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 말만 믿고 그에게 돈을 건넸다.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한국으로 오지 못했다. 상하이의 그 한국인은 여권이 곧 나온다며 미루기만 했다. 속았다고 생각한 그는 2002년 11월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다. 몽골로 탈출할 생각을 한 그는 옌지(延吉)로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

그는 그곳에서 천기원 전도사를 만났다. “천 전도사는 여러 명의 탈북자들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 교육도 시키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했습니다. 추운 12월에 몽골로 떠났습니다. 몽골 국경까지 아내를 포함한 12명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그만 택시 운전사의 실수로 중국 국경수비대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12명의 탈북자들도 붙잡혀 왔습니다.”

별도의 격리 속에 주동자로 몰린 천기원 전도사는 8개월 뒤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 씨는 3개월 동안 감옥에 있다가 두레교회가 지원한 성금으로 벌금을 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 다른 일행은 그대로 붙들려 있었다. 당시 12명의 탈북자에 대한 소식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로 알려졌다.

정 씨는 아내에 대한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고 한다. “아내는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 중국에서 인권 문제가 대두되자 강제로 낙태를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몸무게가 30kg 정도밖에 안 되는 아내가 들것에 실려 북한으로 인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정 씨의 눈이 붉어졌다. 아내와 큰딸 은미, 둘째 운철의 소식은 그 후 전혀 알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으면 통일이 되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넌지시 소망을 말했다.

남한으로 넘어온 뒤로 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들 탈출에 매달렸다고 한다.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빚도 졌지만 이제 거의 갚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대관령식품’이란 회사를 만들어 냉면과 육수를 만들어 업체와 식당에 납품을 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힘들지만 2년만 고생하면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을 잃어버리고는 너무 힘들어 대관령 목장에 처박혀 지냈습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열심히 살 생각을 했습니다. 남한은 열심히 살면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니의 기도가 결실을 맺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 외할머니의 신앙을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그는 지금에 와서야 그 기도의 덕분으로 자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36 호 2004-07-23일 양봉식 기자 sunyang63@korea.com


     
 

 

 
 
Copyright ©1999-2017 사단법인 두리하나   대표 : 천기원
주 소 :  우편번호[ 08726 ]  서울특별시 관악구 은천로 39길 52 | 사업자등록번호 : 220-82-05847
대표전화 :  02-532-2513   팩 스 :  02-532-2517,  이메일 :   durih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