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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스
    등록일 : 2009-06-12 오전 11:43:02  조회수 : 887
  20 . “탈북은 행복을 찾기 위한 고난의 길”  
  등록자 : 두레신문        파일 :

 

No, 20
이름:두레신문
출처:http://dooraenews.com/news/view_news.php?vnum=959&catname=%B5%CE%B7%B9%BF%EE%B5%BF&page=
“탈북은 행복을 찾기 위한 고난의 길”  

임양숙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최희성(왼쪽)씨와 탈북 동료인 이지혜(가명)씨

1994년도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게 했다. 최희성(가명) 씨 역시 북한 식량난의 희생자였다. 1994년부터 배급이 당국으로부터 끊어지면서 집에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최 씨는 남편과 자녀 셋과 함께 1998년 2월 20일에 국경을 넘었다. 한 살배기 아이까지 동행한 북한탈출은 고난의 길을 나서야 했다.

최 씨 가족이 첫 정착지에서 가슴아픈 일이 일어났다. 중국집에 얹혀 사는 동안 주인이 아이들이 많다며 구박을 한 것이다. 한 살배기 아이를 남에게 주라고 구박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아이가 없는 중국인에게 아이를 넘겨주고 말았다. 농사일을 거들며 1년을 보낸 최씨 가족은 재워준 것도 감사하라는 중국 주인의 집에서 품삯도 받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최씨는 중국에서 5년 동안 살았다. 농사일을 거드는 일을 그만 둔 최 씨 가족은 약초 뿌리를 캐어 약재청에 팔거나 남의 집 품삯 일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중국인 집에서 살 때는 돈을 모으지 못했지만 그 집에 서 나와서 2년 동안은 그런 대로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최 씨가 중국으로 탈출하여 바뀐 생각이 있다면 남한에 대한 생각이었다. 자본주의에 물이 든 중국의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중국에서 들은 남한의 소식은 북한에 있을 때 알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중국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본 남한은 자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돈을 벌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지만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생각을 바꾸어 남한으로 갈 생각을 했다.

최 씨는 중국에서 3년 정도 지났을 때 마을을 방문한 남한의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남한에서 온 목사는 최 씨 가족에게 “내일 떠나는데 만나게 되어 어떻게 도울 수 없다”며 1200 원을 주면서 일년 뒤에 올테니 기다려 달라고 떠났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난 뒤에도 남한의 목사는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북한동포의 밀고로 잡혀 원성 감옥에서 한 달을 보냈다.

“감사한 것은 남편이 감옥에 있으면서 북한 여성으로부터 천기원 전도사를 소개받았습니다. 감옥소를 나온 남편은 다시 중국으로 와서 가족들과 함께 천기원 전도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때가 바로 중국생활 4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넉 달이 되던 때에 천 전도사는 탈북자 12명을 거느리고 내몽골로 떠났다. 큰 아들은 일행과 같이 가게 해 달라고 했지만 천 전도사는 일주일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천 전도사 일행은 중국국경수비대에 잡혀 감옥으로 갔다. 최 씨 가족은 한 달 뒤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남한으로 가기 위해 내몽골 행 기차를 탔다. 내몽골이 가까운 아울산 역에서 내린 시간은 저녁 6시, 일행은 새벽4시까지 중국 산을 넘어 13시간 뒤에 가까스로 몽골 땅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곳은 사막이었다. 그것도 겨울이라 눈이 깊게는 허리에 얕게는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풀과 나무가 없는 눈 쌓인 사막을 일주일 동안 걸었다.

“배고프면 눈을 먹었습니다. 금방 몽골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에 먹을 것을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출발했거든요.”

일행은 거의 일주일을 잠을 자지 않고 걸었다. 잠을 자면 얼어 죽을 것 같아 낮 12시 정도에 한 시간 가량 눈 위에서 잠을 자고 나머지 시간은 걸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대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추운 사막에서 일행들은 지쳐 갔다. 모두가 발에 동상들이 걸렸다.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죽음의 길을 가는 것 같았다. 일행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던 길을 되돌아 하루저녁에 12개의 산을 넘어 아울산에 되돌아 왔다. 그러나 그곳에는 또 다른 고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에 도착한 일행의 몰골은 처참했습니다. 일단 허기를 채우기 위해 조그마한 슈퍼에 들어가 국수를 먹고 여관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행색을 수상하게 여긴 여관 주인의 신고로 중국변방수비대에 여관에 들어간 지 40분 만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조서를 받았지만 심한 동상을 입었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조서를 받던 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달아났던 남자들은 다시 잡혀왔다. 남자들은 괘씸죄에 걸려 동상치료를 받지 못하고 최 씨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최 씨의 발가락은 방치하면 썩어들어가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이 넘게 잡혀 있다가 일행은 북한의 도문감옥으로 넘겨졌다. 최 씨의 남편은 그곳에서 주모자로 몰려 정치범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남편과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큰아들은 최 씨보다 먼저 풀려나 중국으로 다시 나갔다. 최 씨가 풀려나 중국에 왔을 때 큰아들은 이미 한국으로 떠난 뒤였다. 최 씨는 작은아들과 함께 한 달 동안 중국에 머물다 몽골이 아닌 제3국을 통해 다시금 남한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최 씨는 아들과 함께 제3국에서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33 호 2004-04-24 인터뷰: 임양숙기자 (nisoge@hanamil.net) 정리:  양봉식 기자(sunyang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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