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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스
    등록일 : 2009-06-12 오전 11:42:04  조회수 : 858
  17 . 한 탈북자의 꿈은 낙엽처럼  
  등록자 : 두레신문        파일 :

 

No, 17
이름:두레신문
출처:http://dooraenews.com/news/view_news.php?vnum=831&catname=%B5%CE%B7%B9%BF%EE%B5%BF&page=
한 탈북자의 꿈은 낙엽처럼  

◀ 이 진수(가명) 씨가 탈북의 꿈을 이루어 국군 수도병원에서 치료받던 모습

두번의 탈북 시도, 체포, 수감생활, 그리고 마침내 탈북에 성공하나 감옥에서 받은 고문후유증으로 결국 죽음에 이른다. 차라리 허구였으면 좋을 뻔했던 아픔을 가진 이를 만났다.

이장수(42세) 씨는 40년 동안 살던 땅을 버리고 탈북해야 했던 부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엔 아직 이른 1년 만에 그들은 큰 슬픔을 당해야 했다. 죽어도 대한의 땅에서 죽겠다고 탈북해 온 둘째 형님(이진수 씨)이 지난 10월 26일 사망하고 말았다.

-둘째 형님의 슬픈 소식을 들었는데 형님은 어떻게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시게 되었나?

형님은 탈북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보위대에 감금되었다. 3~4평 되는 시멘트 바닥 방에 겨울에 수감되어 동상에 걸렸다. 그곳 보위대의 상황은 한마디로 지옥이다. 한 방에 50명씩 앉혀 놓는데 앞 사람의 등이 뒷사람 가슴에 닿을 정도로 빼곡했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고개를 숙이고 무릎 꿇고 몸은 전혀 못 움직인 채 앉아 있어야 한다. 죽음 그 자체다. 조금만 움직이면 총부리로 아무데고 때린다. 한 달만 지나면 무릎, 복숭아 뼈, 엉덩이가 썩기 시작하는데 형님은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엉치에 동상이 걸렸다.

살이 계속 썩어 9월 17일 탈북 후 하나원에서 바로 수도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잔등까지 썩어 가는데 의사 말로는 암보다 무섭다고 했다. 죽어도 한국에서 죽겠다고 넘어 온 것도 기적이다. 병원에서 우리 집이 있는 울산으로 모시고 왔지만 10월26일 돌아 가셨다.

-두 부부는 언제 탈북했나?

꼭 1년이 되었다.

-어떻게 탈북을 결심했나?

98년도에 결혼하여 먹고살기 위해 중국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나는 식당일 등 안 해 본 것이 없다. 그러다가 한국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탈북을 3년 전 결심했고 40년 동안 살던 땅을 버릴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생활이었다. 닥치는 대로 중국을 오가며 일을 했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도와 달라고 요청하다가 두리하나 천기원전도사를 알게 되어 성경책 테이프 심부름을 해 주며 기회를 노렸다.

-바로 성공했나?

아니다. 내몽골에서 잡혀 보위부에 잡혀갔을 때는 국가의 배반자로서 아내 따로 나 따로 수감되었었다. 그 때가 천기원 전도사도 억류되었을 때다.

-수감 생활은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때 아내는 유산하였다.

(아내인 정경화에게 직접 그 상황을 물었다)

첫 번째 탈북 과정에서 붙잡혀 북한 보위부로 보내졌는데 임신 7개월이던 나는 임산부로 전연 대우받지 못했다. 탈북 혐의가 있는지 계속 조사를 받는데 우리는 통과되어 다행히 출옥하였다. 그렇다고 바로 집으로 오는게 아니고 노동단련대로 가는데 30kg의 블록을 상,하차 하는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 벽에 잠깐 기대섰다가 감시원에게 들키게 되었다. 나는 감시원으로부터 쉬었다는 이유로 블록을 들고뛰는 벌을 받다가 유산되었다. 임산부였지만 발길로 차이고 얻어맞곤 했다. 노동 기간이 3개월인데 체력소진과 영양부족으로 나올 땐 나뿐만 아니라 모두 병을 얻어 나온다. 내가 석방될 때 보위부 사람이 죽는다고 다시는 붙잡혀 오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대개는 맞아 죽거나 병을 얻어 죽거나 한다.

어머님과 우리 3남1녀 중 둘째 형님이 돌아가셨다. 북한에 조카 둘(15세, 13세)이 있다. 형님이 큰조카를 데리고 오다가 도중에서 둘이 다 죽을 것 같아 청진에서 돌려보냈는데 탈북에 성공하신 후 몹시 후회하셨다. 큰 형님도 탈북 요주의 수배 대상자로 도피 중이다.

-탈북자로서 성공한 경우인데 어떻게 울산에 왔나?

공업단지이고 산업중심지일 것 같아서 원했다. 나는 3일 만에 바로 일했다. 몇 달 동안 일용직으로 고생하다가 몇 달 전 지금 일자리의 사장님을 만나 아내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무슨 일을 하나?

자동문 셔터나 섀시 공장 선반 가공물 등을 만든다.

-탈북하기 전에도 이 일을 했나?

나는 선반, 장비 등을 했고 아내는 공무 설계, 식당일 등을 했다.

-지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안정된 일자리와 부부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복이다. 다만 북에 남은 가족이 우리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일이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든 어머님과 조카들 모두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우선 두만강이 얼면 어머님이라도 모셔 오고 싶다.

-어려운 점은 없는가?

같은 민족이면서도 문화의 차이가 너무 크다. 언어라든가 인간관계에서 함께 교제하고 호흡 맞추기가 어렵다. 우리 아파트에는 탈북자 가족이 7~8가족 모이는데 독신은 매우 힘들어한다. 탈북자도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인식해 주면 좋겠다.

-교회를 나간다고 들었는데 누구의 전도로 나가게 되었나?

아무도 우리에게 권유해주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갔다. 부부이기에 적응이 더 빠른 편인데 우선 사람들과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외롭고 힘든 탈북민에게 전도가 많이 필요하다.

사람이 사람다운 대우를 받으며 사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하루 빨리 북에 남은 가족들과 안전하게 합류하여 이 땅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28 호 2003-11-23일 발행 두레신문 임양숙 기자 niso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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