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CBS
    NEWDAILY
    YTN
    두레신문
    국제신문
    제주일보
    뉴스모음
    프레시안
    통일정보신문
    KONAS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국민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NK조선
    세계일보
    내일신문
    매일경제
    헤럴드경제
    한국경제
    연합뉴스
    부산일보
    매일신문
    스포츠서울
    일간스포츠
    미래한국신문
    데일리NK
    독립신문
    오마이뉴스
    뉴스앤조이
    굿데이신문
    기독교연합
    크리스천투데이
    크리스천헤럴드
    크리스챤연합신문
    기독일보
    기독교신문
    기독신문
    국제기독신문
    Korea Herald
    기타
    내셔날지오그래픽
    LA타임즈
    와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CBS뉴스
    보스턴글로브
    RFA
    VOA
    USA아멘넷
    기타
    국내언론보도
    해외언론보도
     

뉴 스
    등록일 : 2009-06-12 오전 11:41:23  조회수 : 2156
  15 . 어린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는 탈북자  
  등록자 : 두레신문        파일 :

 

No, 15
이름:두레신문
출처:http://dooraenews.com/news/view_news.php?vnum=773&catname=%B5%CE%B7%B9%BF%EE%B5%BF&page=
어린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는 탈북자  

굶주림으로 엄마와 동생을 잃고 아버지를 따라 허기진 땅에서 벗어나 탈북의 길에 나선 한 소년. 쫓기며, 감시받는 노예의 삶을 벗어나고자 아버지와 헤어졌다가 3년 만에 시신으로 아버지에게 돌아온 소년의 12년 생애는 한 줌의 뼛가루로......

아들의 유골을 안고 있는 유상준씨

2003년 9월1일 오후 2시 파주 통일 전망대에서는 한 소년(유철민, 2001년 죽을 당시 12세)의 뼛가루가 아버지의 손으로 뿌려지고 있었다.

1999년 5월에 헤어져 갖은 사연 끝에 2001년 8월에 만났을 때는 이미 죽어 다시 옛날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중국을 벗어나 몽골을 향하던 중 탈진하여 죽었다는 소식뿐이었다. 겨우 가매장을 하여 아들을 묻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버지, 그는 탈북자 유상준씨(41세)다. 아들을 시신이나마 눈으로 확인하고 땅에 묻은 지 다시 2년 만에 유골을 한국으로 가지고 왔다. 화장하여 뼛가루를 북쪽 땅을 바라보며 뿌리는 아버지의 가슴도 아픔으로 죽어 있었다. 오직 철민이가 배고픔 모르고 슬픔 없는 그런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아이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지켜주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 자리에 함께한 탈북자 동지 <백두 한라회 모임>의 식구들이 눈물을 짓고 있었다. 유상준 씨는 고향 땅에서 옥수수 가루만 먹을 수 있었더라도 아들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하며 두 주먹을 쥐었다. 탈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상에 알리고, 탈북자들을 돕는 일만이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겼다. 아래에 탈북과정과 최근의 그의 심경을 들어본다.

1997년 협동농장 농민이었던 유상준 씨는 아내와 두 아들(철민:당시 8세, 철웅:5세)과 함께 풀뿌리를 캐 먹는 굶주림에 시달리며 함북 청진에서 살고 있었다. 작은아들이 굶주림으로 죽고 아내는 산후병으로 계속 앓다가 처갓집으로 갔다. 유상준 씨도 함께 가려 했지만 통제 불가능 구역이어서 철민이와 함께 옮기지 못하였다.

98년 4월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들었으나 가 볼 수도 없었다. 열차로 강원도 원산까지 1주일, 거기서 통천까지 이틀을 걸어야 하는 왕복 15일 이상 걸리는 거리를 오고 갈 여비가 없었다. 그는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고 4월 19일 탈북을 단행했다. 그는 정든 고향산천을 떠난다는 생각도, 더구나 탈북을 시도했다가 붙잡히면 반역자가 되는 그 길을 밟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굶주려 죽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의 마을에서만 70여 명이 죽는 상황이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무산행 열차를 탔다. 그 당시 유리도 의자도 없는 북한 열차엔 향방다니는 사람(방향 없이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산에서 대홍단까지 80km를 3일간 걸었다. 그곳에서 지리를 익힌 후, 4월27일 도강했다. 비가 내리는 오전 7시, 군인 교대시간이었다. 연변 하룡시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중국 내륙이었다.

가능한 한 산골로 들어가 귀틀집(나무로 엮은 집)에서 소 방목을 하며 40여 일을 보내다가 더 깊숙이 숨어들어 갔다. 98년 12월엔 새벽 4시에 옆집에서 4명의 탈북자가 잡혀 들어갔다. 일을 하면 굶지는 않지만 탈북자의 삶은 노예다. 공안원에게 언제 잡혀가 반역자로 처단을 받을지 모른다. 99년 5월, 철민이를 더 이상 노예의 삶을 살게 할 수없어 조선족에게 주었다. 중국 국적을 취득하여 숨어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길로 유상준 씨는 연길로 나와 온갖 일을 하다가 위장병으로 겨울에 장백으로 가서 150원을 벌어 쉬던 중 한국의 젊은 여자 분을 만났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뜻은?

그 여자분이 누구인지 그 후로 만나지를 못하였는데 그 분이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를 소개해 주었고 그 선교사는 두리하나 선교회 소속(이사장 : 김진홍 목사)인 천기원 전도사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그들을 처음부터 믿을 수 있었나?

아니다. 기대하지 않았고 나는 열심히 일 했다. 시멘트 공장에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뜸을 뜨며 치료를 하고 있는데 천기원 전도사가 찾아 왔었다. 나는 그를 의뢰하지는 않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 온 것은 인정했다. 그는 내 손에 억지로 200원을 쥐어주며 말씀을 전하고 갔다. 그 후로 미국인 선교사가 나를 몇 번 찾아 주었고 산골짜기를 찾아 온 그에게 나는 물 한모금도 대접하지 못하여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한국은 어떻게 왔나?

2000년 12월 천기원 전도사의 전화를 받았고 조선족 안내로 탈북자 20여 명과 함께 중국을 출발했다. 몽골까지 10여 일 걸렸고 그곳 몽골 경비대에서 3일 구류되었다가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중국과 몽골에서는 통과 하는 일이 쉬웠나?

몽골의 12월은 몹시 춥다. 우리는 국경 경계선에 1시간 반을 엎드려 있다가 국경선을 넘자마자 몽골 경비대에 일부러 체포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물이 없는 사막, 혹독한 추위 등으로 죽게 된다. 잡혀 있는 동안 눈을 가린 채, 손발을 끈으로 묶이고, 맞고, 발길로 걷어 차이는 등 인권이란 없었다. 특히 용변을 볼 수 없었던 것은 고문과 같았다.

-철민 군의 소식은 어떻게 들었나?

2000년도에 중국을 떠나면서 수소문했지만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 온 2001년 3월에 천기원 전도사에게 아이를 한국에 데리고 와 달라 부탁했다. 장춘에 있는 아이를 미국인 선교사가 겨우 찾아서 8월에 다른 탈북자와 함께 탈북을 시도했는데 철민이는 몽골에 도착하기 전에 탈진하여 잘못되었다는 소식이 전부다.

-철민군과 직접 소식은 주고 받았나?

헤어질 때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 눈물만 흘렸는데....탈북 직전에 전화로 아버지 보고 싶다고 건강하라고 했다. 이 말이 마지막이다.

-철민 군을 왜 직접 데리러 가지 않았나?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지금도 한이 된다. 이번 시신 수습하는 과정도 한국 주재 몽골 대사관을 통해서 몽골 대통령 앞으로 편지 써서 이루어졌다.

-지금 심경은?

남은 삶을 탈북자 돕는 일에 쓰임받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왜 정든 고향을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려고 하는지 북한 주민의 굶주린 실상을 알아야 한다.

아들의 뼛가루를 뿌린 지 겨우 1주일, 유상준 씨는 여권이 나오면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탈북자를 구해 낼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역사 속에서 겪은 고통, 상처가 치유될 날은 언제일까를 생각한다. 하나님은 대답 대신 비를 억수같이 퍼붓고 계셨다.

26 호 2003-09-18일 발행 임양숙 기자(nisoge@dooraenews.com)

     
 

 

 
 
Copyright ©1999-2017 사단법인 두리하나   대표 : 천기원
주 소 :  우편번호[ 08726 ]  서울특별시 관악구 은천로 39길 52 | 사업자등록번호 : 220-82-05847
대표전화 :  02-532-2513   팩 스 :  02-532-2517,  이메일 :   durihana@korea.com